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간의 노오오오력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북한의 도발을 비난하는 듯하였으나 오히려 도발을 일으킨 북한뿐만 아니라 그러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미국이나 우리나라 등 주변국들도 함께 싸잡아 비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 외교장관은 중국 외교부장과의 전화통화조차도 (다른 한반도 주변국들 외무장관과는 달리) 상당히 늦게 하였으며, 한-중 국방장관 간의 핫라인도 불통인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조차 못하고 있다. 필자는 네 가지 이유로 중국이 북한을 절대로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남북한 간의 갈등 상황에서 중국이 남한 편에 서는 일은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있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에너지솔루션아레나와 솔트팰리스 컨벤션센터 사이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경찰이 임시 횡단보도를 만들어 지나가는 차를 멈추고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을 보았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우리의 규칙에 따르라'고 강요하는 대신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준 것이다. 여전히 민(民)을 대하는데 관(官)의 권위주의를 내세우고, 민원인의 편의보다 까다로운 행정 절차를 앞세우는 우리나라의 행정 기관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북 흡수통일, 내년 총선 및 내후년 대선에서의 주도권 행사, 상하유별의 선민의식을 드러낸 박 대통령의 일련의 행보가 하나의 점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집권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 누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일반 장병에 대한 특별휴가 하사도 봉건 의식의 이면에 젊은층에 대한 구애가 강하게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의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중략)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지배가 가져다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3자 회담이 열릴 즈음, 이런 호전 흐름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기간 중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남자 문제'를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이다. 그에 대한 결심재판이 21일로 예정되어 있고, 통상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10월 말께 선고가 이뤄진다.
이번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및 선제 포격으로 여실히 드러났듯이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상태이다. 그런데 중국의 소위 인민해방군은 6.25 때인 1950년 10월경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위장된 명칭으로(즉 마치 중국인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독재정권을 돕겠다는 자들만이 모인 것인양 이름을 붙였으나 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규군인 인민해방군 부대들이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구호 아래 우리 대한민국의 동맹군이 미군 및 우리 국군이 포함된 유엔군에 맞서서 북한을 도운 우리의 적군이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중국은 북한과 공식적인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남북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남북 관계 개선을 방해할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내년에라도 북한이 붕괴될 사태에 대비하라는, 대통령으로선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의 봄을 보고 북한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닌 오류의 반복이다. 개탄스럽다. 1870~1871년 비스마르크 아래서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을 탁월한 전략으로 지휘해 독일 통일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전설적인 전략가 헬무트 몰트케는 "정치가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어야 하지만 모든 진실을 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경구(Maxim)를 남겼다.